전체 글15 성공과 실패, 그 사이 : 전설의 왕대왕 고구마 알현기 작년 농사는 한마디로 '자선 사업'이었다. 들쥐 형님들에게는 알찬 고구마를, 염소 녀석들에게는 싱싱한 줄기를 아낌없이 '조공'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남은 건 오직 빈손뿐. '연습'이라는 핑계로 위안 삼았지만, 자루에 심은 것까지 폭망했을 땐 정말 고구마랑 절교할 뻔했다.그런데 올해, 이 녀석들이 나를 밀당(?)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왜 니가 나와?' 싶은 뚱딴지 같은 곳에서 고구마가 자라고 있었던 것. 두 개는 상태가 영 메롱이라 포기하고, 오늘 남은 하나를 잡았다.우와, 넝쿨 봐라. 이거 고구마 맞아? 정글 탐험하는 줄 알았다. '넝쿨 많으면 알 안 찬다'는 어른들 말씀이 뇌리를 스쳤다. '아, 올해도 염소밥이구나...' 하며 체념하려던 순간! 헉!! 내 눈을 의심했다. 흙 속에서 나온 건.. 2026. 10. 13. 4년 만에 찾아온 뜻밖의 선물, 우리의 첫 쓰레기통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 집엔 쓰레기통이 없었다.이 땅에 터를 잡고 살아가며 2~30년 동안 쌓여있던 옛 쓰레기들도 만만치 않았지만, 우리 네 식구가 살아가는 동안 나오는 생활 쓰레기 역시 결코 만만치 않았다.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정리를 이어갔다.박스는 텃밭으로 보내 땅을 살리는 데 쓰고,캔과 유리병은 모아두었다가 리사이클 센터로,남은 음식물은 동물의 먹이가 되거나 퇴비로 돌려보냈다.그렇게 자연과 순환하며 살아보려 애썼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나오는 쓰레기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가 여만저만이 아니었다.사실 그동안 버틴 이유도 명확했다. 이 멀고도 깊은 곳까지 쓰레기통을 배달받는 딜리버리 비용과 매달 들어가는 수거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집 건축이 다 끝나면, 그때 .. 2026. 10. 12. 발목에 내려앉은 온기, 우리 집에 새 식구가 왔다 오늘 드디어 어린 오리들이 집에 들어왔다.처음에는 내가 한 걸음 다가가려 할 때마다 녀석들이 펄쩍 놀라며 도망치기 바빴다. '아직 낯설고 무섭겠지' 싶어, 욕심내지 않고 바닥에 가만히 자리를 잡고 앉아있어 보았다.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가만히 숨을 죽이고 기다려주니, 이곳저곳 탐색하며 맴돌던 녀석들이 하나 둘 내 근처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하나씩 자리를 잡고 누워 편안하게 쉬는 게 아닌가. 심지어 털뭉치 같은 녀석 한 마리는 내 발목 위까지 뼘뼘 올라와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첫날부터 이렇게 마음을 열어주다니, 시작이 제법 나쁘지 않다.아이들에게는 짐짓 엄한 척 일러두었다."얘들아, 이 오리들은 귀여운 애완동물이 아니라 우리가 키우는 가축이란다". 매번 같은 다짐을 해 두지만 아이들도 나도 언.. 2026. 10. 2. 또 한발 늦었다. 며칠 전부터 노랗게 익어가는 멜론을 보며 오늘일까, 내일일까 망설였다. 오늘 드디어 마음을 먹고 들었을 때 바람에 실려 온 향은 감미로웠지만, 들쥐가 이미 밑바닥을 깊게 파먹은 후였다. 수박도, 멜론도… 늘 한발 늦는다.문득 전도서의 말씀이 마음을 스친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단순히 과일을 수확하는 농사의 타이밍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지난 십여 년의 삶을 돌아보며 늘 고심해 온 인생 전체의 '때'에 관한 이야기다.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회, 결단해야 할 순간, 사랑하고 내어주어야 할 때…. 우리는 늘 '조금만 더', '다음에'라며 미루다가 가장 소중한 때를 놓쳐버리고 뒤늦게 씁쓸한 향기만 맡고 있는 것은닐까.한두 번도 아닌데 여전히 미련하고 게으른 나 자신을 보며,.. 2026. 9. 24. 나무 그늘 아래, 우리들의 작은 휴식 산골 생활의 진짜 매력은 커다란 이벤트가 아니라, 계절이 슬며시 바뀌는 순간을 온몸으로 마주할 때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아침저녁으로 차가운 공기가 기분 좋게 알맞아지고, 낮에도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는 일 년 중 몇 안 되는 선물 같은 날씨가 찾아왔습니다.동쪽의 두 그루 소나무가 아침 해를 막아주고, 서쪽 도토리나무가 든든하게 그늘을 드리워주는 곳. 얼마 전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마당 한구석에 무심하게 던져두었던 낡은 테이블을 옮겨놓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근사한 야외 쉼터가 만들어졌습니다.토요일 아침, 단비가 정성껏 타 준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 커피 한 잔을 들고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잔에 부딪히는 얼음 소리와 차가운 모카 빛 커피 한 모금에 주말의 여유가 가득 채워지는 듯했습니다.주일 오후에는 아이.. 2026. 9. 22. 쌀쌀한 아침, 뜻밖의 선물 구기자 오늘의 날씨 & 아침 풍경벌써 이틀째인가? 아침에 나와보니 온 세상에 이슬이 엄청 내려 마치 밤새 비가 내린 것만 같다.기온이 화씨 50도대(섭씨 10도 안팎)까지 뚝 떨어졌으니 '설마 서리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갑작스레 싸늘해진 아침 날씨 탓에 포근한 침대 밖으로 나오기가 여간 힘겨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게으름과 힘겨움을 털어내고 마당으로 나오니, 추위를 이겨낸 보람이 있는 예쁜 풍경들이 반겨준다. 저 멀리 산등성이에 몽실몽실 걸려 있는 구름 띠가 그렇고, 알록달록 꽃들과 정성껏 키운 야채들 위에 촉촉하게 내려앉은 이슬방울들이 그렇다. 자연이 아침마다 차려주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식탁 같다. 손안의 작은 달콤함, 구기자한동안 방치되다시피 해서 반쯤은 기억 속에서 잊혀 가던 구기자.. 2026. 9. 19. 이전 1 2 3 다음